우리 작은 형님을 주님 품안에 떠나 보내면서……
금년(2012년) 초 겨울 매서운 한파로 심근 경색 등 심혈관 질환 사망자 수가 급증한다는 보도입니다.
119 구급 대 에 실려 김해 복음 병원에 입원 하셨던 저의 작은 형, 서원(徐 鴛) 형님께서는
2012년 11월 29일 새벽 심장 쇼크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난 작은 형님 장례식에 침석도 하지 못 하고 멀리서 형님을 보내는 마음, 그 동안 몇 번이나 연락이 왔을 때,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핑계로, 매정하게 끊고, 형님이 바라던 금전적 요구를 들어 주지 못한 점, 너무 죄송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주님, 나의 죄악을 용서 해 주 오시고, 우리 형님의 영혼이 영원히 주님 품 안에서 인식을 취하도록 허락 해 주시 오소서…………………………
지난 2012년 7월 달 에 처음 동 대구 역 부근에서 쓰러 지셔서, 파티마 병원 응급실에 이송되어 누워 계신다는 연락을 받고 들렸을 때 (하단 사진 참조) , 그때 무의식 상태에서도 제가 형님 일어 나시라고 할 때, 입가에 미소를 짓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비록 의식은 없지만, 다 들으시고 가벼운 미소로 화답 하셨습니다. 밤새동안 형님 옆에서, 형님의 의식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형님을 병원에 두고, 저는 다시 프랑스로 왔습니다.
그후 작은 형님은 의식을 되찾고 새 삶을 사시 겠다고 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 얼마나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 했는 지 모릅니다.
1950년 생 범띠로, 청운의 기상을 띠고 태어난 작은형은 어릴적부터 머리가 비상하고, 경북 중 고등 학교, 서울 대 경영학과를 나오신 그렇게 총명한 작은 형님,
어릴 적에 그림도 잘 그리고, 시도 잘 쓰시고, 색소폰도 잘 부시던 형님…… 아버님이 법학과에 진학하여 시골 말단 공무원의 아들이 판 검사 되기를 바랐거만, 형님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기업체를 전전 하다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이민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시고, 여러 차례 사업 실패로 종국에는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한국으로 오셔서, 그 동안 홀로 살아 오셨습니다.
수년간의 가족과 생이별, 그리고 이어지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결국은 형님의 신앙 생활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그 동안의 자신의 삶을 정리한 자전 기를 집필 해 놓으시고,곧 출판을 하게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책 발간 소식은 없었고,이렇게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되고, 이제 영원히 주님 품 안에 안기셨습니다.
이제,천국에서,우리 작은 형님은 예수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시고, 주님께서 우리 작은 형님의 영혼을 위로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저의 작은 형님 응급 입원 소식을 듣고 기도 할 때, 주님께서는 이제 염려하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형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성도님, 비록 얼굴도 모르는 우리 작은 형님 이지만, 우리 형님의 영혼 안식을 위해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다음은 우리 형님의 마지막을 알리는 소식입니다.
더욱더 신앙 생활을 충실히 해 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2012.11.30 서 봉 (徐 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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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 23:11
형님, 안녕하십니까?
어제 작은 형님의 뼈를 어머니 묘 오른쪽 아래에 묻고, 오늘 부남 명성교회에서 주일예배드린 후 돌아 왔습니다
어제 하관예배는 큰형수의 요청으로 명성교회 목사님이 인도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 전하실 때, 작은형님께서 시골에 잠시 계실 때 '전에 교회 잘 다니다가 최근에 잘 안나가고 있는데,
앞으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겠다'고 목사님께 고백한 내용을 알려 주시며 천국으로 가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입관예배와 발인예배는 형님 다니시던 교회를 알지 못해 수원자형이 대신 인도하였하고
저와 동생이 기도하였습니다.
(중략)
뉴질랜드 조카들이 아빠와 헤어진 슬픔을 딛고 강한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기도하여야 되겠습니다
(중략)
작은형님 학교 친구와 회사분들이 작은형님의 예술가적 성향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돈이 생기면,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다 쓰고
자기가 어려운 중에도,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그 부분은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많이 도와 주셨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작은형이 쓴 "예술가의 생애" 원고를 조카이에게 전해 주며
그 안에 있는 시 2개를 소개하며 읽었더니
큰집누나와 자형이 오늘 전화하여, 시를 잘 썼더라고 하며
조카에게 주기 전에 복사하여 문화재콘텐츠를 담당하는 큰집 작은 누나 자형에게 부쳐 주라고
하였습니다.
안그래도 저와 큰형이 복사하기로 했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작은형님의 그림과 시의 예술가적 성향은 누가 따라올 수 없지요.
(중략)
저를 애기를 다독거리 듯이, 다독거리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내 살기에 바빠, 작은형님의 다른 측면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미래의 부담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 그 만큼 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기뻐하며, 옛날 일을 함께 회상할 수 있는 분들도
안 계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형님께서는 전날 오후 병원에 입원 하실 때 손과 눈으로 대답도 하시고 하셨는데, 다음날 새벽 6시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만,
( 중략)
범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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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30 22:45
우리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작은형님은 살아 계실 때 예수님을 믿어 천국에 가계신 것을 믿고
그 영혼을 품고 위로하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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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30 09:57“
형님, 지금 여기는 병원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어 살아생전에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니
형님은 지금 천국에 예수님과 함께 계시리라 믿습니다.
조카가 오늘 저녁에 도착하면 (내일 2시쯤 병원도착)
내일 아침 입관 발인예배 후 화장하여
시골에 가서 어머니 묘 밑에 묻을 계획입니다.
큰형은 화장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작은형 본인도 원했고 자녀도 한국에 없어
화장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2012.11.29. 06:37
형님,
작은형, 돌아가셨다고 연락 왔습니다
동생을 통해서 조카에게 알리겠습니다
독일의 작은 누님에게도 연락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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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9 00:30
형님, 작은 형 오늘 김해 복음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 받았습니다(055-330-8888)
119로 응급실로 갔는데 아직 의식은 못 차리고 있답니다.
(중략)
병원 의사가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연락이 와서 제가 토요일에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일단은 의식을 차리지 못해 간병인(1일 3만원)을 둔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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