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앙드레아 쁘똥 신부(神父)님을 추모하며……
A la mémoire du feu Père Andrea BOUTON,
Que ton âme se repose en paix sur Dieu seul,
Dans la grâce du Jésus Christ, Notre SEIGNEUR ! Amen
지난 70년대 대구에서 경북 대학교 사범대 불어과, 효성 여대 불문학과를 다녔던 분들은
아마도 브똥 신부님을 기억 하시리라 봅니다. 왜관에 있는 성 분도 수도원에 봉직 하시면서,
대구에 있는 각 대학교에 출강 오셔서, 틈틈이 불어 회화 강의를 맡아 주셨던 정말 고마우신 프랑스 신부님이십니다.
불어를 배우고 싶어서,학창 시절 친구(김**)와 같이 우리 두 사람은 일요일 마다 왜관 행 완행 기차를 타고, 수도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점심 시간대 브똥 신부님이 산책을 나오시면, 그분과 같이 산보 하면서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불어를 듣고, 어설프게 이야기 하면서 월성 1호기 원자력 발전소 건립 공사장까지 갔다가, 수도원으로 되 돌아 오곤 했습니다. 매 주마다 어김없이 우리를 반겨 주시고, 자신이 전공한 성당 벽화 모자이크 작업 사진을 보여 주시면서, 한국의 성당에는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 상을 모자이크로 그린다고 말하시곤 했습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수도원을 l'Abbaye 로, 수도 원장 또는 수도원 사제를 l'abbé로, 수도사를 les moines 라 칭하고, (학교, 또는)수도원의 식당에서 수도사와 같이 식사하는 것을 Je mange avec les moines au réfectoire 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가톨릭 신자도 아닌 우리를 반겨 주시고, 브똥신부님의 사랑으로 우린 그때부터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을 영접 할 길을 열어 주신 고마우신 분입니다.
그렇게 한국을 사랑하시고, 한국의 청년들을 아끼시던 신부님은 자신의 뼈를 묻고 싶다는 한국을 어쩔 수 없게 떠나게 되었고, 일본에서 짧은 기간의 체류 하신 후 자신의 조국 프랑스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1980년 3.12일( 66세) 뇌출혈로 소천(所天) 하셨습니다.
70년 대 말 사우디 건설 현장에 근무하고 있을 때, 브똥 신부님은, 나에게 왜 그러고 있느냐, 어서 프랑스에 와서 못다한 학업을 계속 하라는 권면 편지를 보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딫쳐 그냥 그대로 무시하고 살 앗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브똥 신부님은 그 당시 몽벨리에에 유학 중이 던 친구와 저를 간곡히 찾으시며 소천(所天) 하셨다 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시절 브똥 신부님의 유학 권면을 무시한 무지(無知?)를 자책 하며, 내가 진작 프랑스로 갔다면,살아 생전에 그분을 만 날 수 있었지 않았을 까? 안타까운 심정이 가슴이 찢어 질 것 같앗습니다..
그 이후 세월 흘러 가는 대로, 그저 앞만 보고 살아왔고, 진작 프랑스에 와서 살면서도 파리에서 겨우 250키로 떨어진 신부님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계시는 묘지를 찾아 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무심코 예전 친구가 보낸 불어 이 메일을 검색하여 읽던 중 문뜩 브똥 신부님 묘지를 참배 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 부랴 기차가 다니는 St Omer 역까지 기차표를 예약하고, 대중 교통이 없는 Wisques 마을에 있는 St Paul 수도원까지 택시를 예약 하였습니다.
어쨌든, 수도원에 들려서 묘지를 물으니, 수도원 자체 묘지는 없고, 동네 공동 묘지에 가면 왼쪽에는 일반인 공동 묘지이고, 오른쪽으로 흰색 십자가가 꽂힌 묘지가 수도사(les moines)들이 묻힌 묘지이다. 너무 오래 되어 정확한 브똥 신부 묘소 위치는 모른다. 가서 십자가에 적힌 이름으로 확인하라는 설명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네 공동 묘지가 있길래, 찾아가서 약 40여 수도사 십자가 팻말을 하나 하나 확인 하다 보니 두 번째 줄 중간에 앙드레아 브똥 신부님( 세례명: 돔누스)의 십자가 팻말을 찾았습니다. 그저 맨땅의 흙으로 덮인, 출생일자와 소 천한 날 자만 적힌 흰색 십자가만 꽂혀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쪽에 적힌 In pace(라틴어: 불어로 en paix,영어 in peace,우리말: 평안)는 내 영혼이 주안에서 평안을 누린다는 메세지를 보여 주시는 것 같앗습니다.
신부님께서 흡사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
Que mon âme se repose en paix sur Dieu seul !!!!!!!
故 앙드레아 브똥 신부님은 이 땅에 자신의 함자만 남겨 놓고,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시고 계십니다. 40여기 수도사 묘지에는 서너 군데만 간간이 조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오래 전 내 친구가 다녀 갔던 신부님 묘소에 나와 집사람은 학창 시절의 신부님 모습을 그리면서 신부님을 추모 하였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브똥 신부님 수업 시간 출석 확인 후, 일부 학생이 불어 회화 공부가 싫어 나가면, 나가는 학생을 보면서« Au revoire, Mademoiselle » 라 인사하시던 신부님 모습을 그려 봅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가르쳐 주셨던 프랑스 샹숑 « avec les sabots =내 신발»도 읇어 봅니다.
신부님이 소천 한 지32년, 그리고 제가 프랑스에 와서 산지 12년 만에 들린St. Paul 수도원이 있는 Wisques 마을의 공동 묘지는 한적 하지만, 너무나 아늑한 묘지 엿 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국화 꽃 화분을 십자가 아래 내려 놓고, 주님의 십자가 아래 그 동안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 놓았습니다. 하늘도 우리의 묘지 참배를 반기는 지, 추모를 마치고 나오면서 묘지 철문을 잠글 때, 고리가 잘 걸리지 않아 끙끙댈 때,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 하더니 제법 비 줄기가 세어 졌습니다. 택시 기사가 안되겠다 싶었던지 우산을 들고 와서 받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고리를 걸려면 앞으로 당겨 야 하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겨우 철문을 제대로 잠그고 택시 안에 앉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구15.000명의 셍또메르 市 에 도착하여 커피 한잔을 하는 동안에, 내리던 비도 그치고, 맓은 한 나절을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내 구경을 하였습니다. 어! 여기에도 이런 것도 있네, 신기해 하면서.......
비록 당일 치기 참배이지만, 참으로 뜻 깊은 하루 였습니다.
끝으로, 내가 바친 국화 꽃이 시들기 전에 브똥 신부님을 아는 누군가가 들려서 새 화분으로 바꾸어 주고, 브똥 신부님이 잠드신 십자가 아래 조화가 아닌 생화가 늘 놓여 져 있기를 소망합니다.
언제 다시 이곳에 들릴 수 있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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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브똥 신부님이 잠드신 묘지 주소입니다.
Feu Père Andrea BOUTON
La cimentière de l’abbaye Saint –Paul de Wisques :
S/c l’Abbaye de Saint-Paul
62219 WISQUES
Tél : 03 21 12 28 55
수도원이 있는Wisques 는 기차가 다니는 St. Omer 역에서 약 8키로 정도 떨어진 조그마한 마을입니다. 따라서 파리에서 간다면:
Paris-Arras까지 TGV 을 타고(편도 최저 요금 24유료)
Arras-Hazebrock까지
그리고Hazebrouck 에서 St. Omer까지 Ter 북쪽 순환 기차(두 구간 편도 요금 15.7유료)
그리고 St Omer역에서 Wisques까지 택시를 타야 합니다.
택시비는 편도14.60유료,
왕복 약 21유료
대기 시간 15분 약 5유료, 한 시간은 20유료 선입니다.
편도로 갔다가, 한, 두시간 뒤,다시 택시를 부르면 왕복 요금을 부담 해야 합니다. 차라리 30분 정도 대기 시키는 것이 편합니다.
택시는 사전 예약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택시 연락처는
AA Europ’Taxi
104 rue Calais
BP 30274
62504 Saint Omer Cedex
Portable: 06 07 77 84 53
03 21 98 10 95
e mail: aaeuroptaxis@orang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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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하늘 나라 우리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계시는 앙드레아 브똥 신부님을 추모합니다!
그리고, 늘 참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12년 9월28일 서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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